제주도 여행 둘째날 (3) - 우도
지도를 보니 우도 올레는 조일리 사무소 방향으로 찾아가야 한다.
아까 온 길을 되짚어 조일리 사무소 방향을 향해 걷는다.
올레 리본은 진작에 사라져서 길을 찾기가 쉽지 않네.
그러다가 결국 친구가 '맵스 미'라는 앱을 켜고 길을 찾는다.
모르기는 해도 리본이 바닷바람에 금세 낡을텐데 새 리본을 묶기 위한 작업이 쉽지는 않겠지.
자원봉사자들이 모든 올레길을 바쁘게 돌아야 가능하리라.
그러니 우도까지 신경쓸 여유가 없지 않았을까.
낮은 담장들이 키재기를 하는 마을을 지나고 버스 정류장도 지난다.
보리인가 초록빛을 띤 농작물이 유난히 눈에 띄네.
아무리 우도라고 하더라도 밭에 작물이 거의 없어서 초록의 싱싱함이 더 도드라지겠지.
추적추적 겨울비가 내리는 길을 아무 생각 없이 걷는다.
그러다가 우산을 든 팔이 아프면 그대로 비를 맞기도 하고.
등에는 배낭, 한손에는 우산, 다른 한 손에는 스마트폰을 들고 가는 길이다.
얼마쯤 걸었을까?
조일리 사무소를 지나 하고수동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하고수동 해수욕장은 검멀레 해변에 비해 꽤 넓다.
그래서 그런지 해변에서 사진을 찍으며 즐기는 사람들도 많군.
주변에는 카페에 주점, 음식점, 펜션까지 번화하네.
우리도 해변으로 내려서본다.
바닷물을 만지고 발을 담그지는 않지만 적어도 모래는 느껴보아야 하지 않을까.
모래는 아주 곱다.
겨울이지만 비가 오지 않는다면 모래를 만지며 잠깐이라도 놀고 싶어진다.
해변에서 다시 길로 올라선다.
시계는 오후 2시 30분을 향해 가고 있다.
지도를 보면 우도 올레길 중에서 아직 반도 안 걸은 것 같아 마음이 바빠진다.
'안녕, 육지 사람'이라는 재미있는 이름을 가진 카페를 지난다.
나도 손을 들어 '안녕, 섬 사람'이라고 하면서.
밤새 별을 품은 파도가
모래 둔덕에 앉아 기웃거린다
싱싱한 새벽 건져 올리는 해안선
물풀은 한없이 자유롭고
돌아와 누우면
가슴팍을 찾아드는 뱃고동 소리
단단하게 속이 찬 하늘
깊이 뿌리박고 꿈을 부르면
비로소 닻을 내리는 바다
목쉰 등대 몰아대는
우도의 바람은 불지 않고 늘
운다
서정혜의 < 우도에 가면 > 전문
걷는 속도를 높인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간혹 올레 리본이 보이는데 좋은 포장도로 두고 한 바퀴 빙 돌게 만들어진 길로 안내한다.
가다 보면 꼭 포장도로와 만나게 되어 있는데...
'똥개 훈련시키는 것도 아니고 이게 뭐람?'
우회로가 포장도로가 아니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거리를 늘리기 위해 일부러 그런 모양이라고 구시렁거렸다.
벽화가 곱게 그려진 마을을 지나 하우목동항에 도착했다.
하우목동항은 성산항에서 오는 여객선과 종달리에서 오는 여객선이 입항하는 곳이다.
우도를 돌아보다가 천진항까지 가기에 거리가 멀면 여기에서 성산항으로 가는 배를 타도 된다고 했다.
살짝 꾀가 나기도 하지만 빈 말로 여기에서 배를 타고 그만 나갈까 하고 친구를 바라본다.
어이없는 표정의 친구가 서 있다.
시간이 오래 된 것 같은데 오후 3시도 안 됐네그려.
우도 올레를 여기에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했는지 바닷가에 우도 올레길을 알리는 표지판이 서 있다.
올레 리본을 따라 걸으니 항구가 있어서인지 전기카트 빌려주는 곳이 눈에 띈다.
지나가는 전기카트를 보면 뒤뚱뒤뚱 좀 위험해 보이기도 하지만 둘이 앞뒤로 꼭 붙어 탈 수 있게 되어 있다.
모양이 귀엽게 생기기도 했고.
시간 여유가 있으면 한번 타 보고 싶기도 하다.
이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전기카트 앞에 쓰인 '넌 걸어! 난 탈래!' 문구가 약을 올리는 것만 같다.
오늘은 전기카트 패스!
길을 따라 발걸음을 내딛으니 사람들이 많은 곳에 관광버스도 서 있다.
가까이 가 보니 안내판에 '西濱白沙'라고 되어 있다.
여기도 우도 8경 중 하나라고.
우도의 서쪽 바닷가에 紅藻團塊 해변이 있는데 이 하얀 모래사장이 대한민국에서 우도에서만 볼 수 있어서 2004년 천연기념물 제438호로 지정이 되었다고 한다.
서빈백사는 미국의 플로리다, 바하마와 함께 세계 3대 홍조단괴로 형성된 해빈이란다.
광합성에 의해 성장하는 석회조류식물에 생리적으로 축적되는 탄산칼슘이 나중에 단단하게 굳어져서 돌처럼 형성된 것을 홍조단괴라 하는데 반출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
세상에는 신비로운 일들이 참으로 많다.
우리도 사진 몇 장 찍고 발길을 돌린다.
길가에 억새 형님처럼 생긴 것이 보이네.
팜파스 그라스다.
팜파스는 주로 남미에서 자라는 식물인데 요즈음은 조경용으로 공원에 심기도 한다.
우도에서는 잘 자랄지도 모르지.
이제 천진항이 코 앞이다.
휴! 비 내리는 날, 참 열심히 걸었다.
친구는 내게 배 시간을 확인해 보라고 한다.
마지막 배는 오후 5시이지만 지금 시간을 보니 오후 3시 20분이 좀 넘었다.
오후 3시 30분 배를 타고 나갈 수도 있겠다.
항구를 보니 배가 대기하고 있다.
갑자기 마음이 바빠져 천진항 부근에서 우도 땅콩을 산다던 친구는 그만 포기하고 배를 향해 달린다.
덩달아 숨을 몰아쉬며 승선을 하고 나니 단체관광객을 기다리느라 배는 10여분 넘게 서 있다.
땅콩을 사고 배를 타도 될 뻔했네.
우도 올레길을 따라 걸으며 우도를 돌아보는데 5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친구는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하는데 우리가 훈데르트 바서 리조트에서 1시간쯤 보낸 걸 생각하면 늑장을 부린 건 아니지.
길을 잘못 찾아 몇 번 같은 길을 오가기도 했고.
여객선 바닥이 따뜻해 살그머니 졸음이 쏟아지는데 드디어 배가 성산항을 향해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