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쿠오바디스; 아이다'
묵직한 영화를 감상했다.
'쿠오바디스, 아이다'
오래 전 만들어진 종교 영화 '쿠오바디스'가 아니다.
'쿠오바디스'는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는 뜻이라고 알고 있다.
정말 신이 있다면 신에게 묻고 싶은 질문일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많이 부끄러웠다.
'보스니아 내전'이라고 알고 있는 전쟁에 대해 내가 너무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동안 국제 뉴스를 오래 장식했던 사건인데 말이다.
감독 야스밀라 즈바니치는 여성의 눈으로 자신의 나라에서 벌어진 전쟁을 다룬다.
그런 전쟁에서 여성은 훨씬 가혹한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
새삼스럽게 UN이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분노하게 된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미얀마 사태도 마찬가지이다.
미얀마에서는 지금 인권이 유린되고 무정부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내전 상태로 치닫고 있는데도 UN은 강 건너 불 구경이다.
강대국들이 경제적 이해 득실, 종교 문제 등등 여러 가지를 따져 먼 발치에서 구경만 하고 있는 형국이다.
UN의 존재 이유를 묻게 된다고나 할까.
보스니아 내전은 유고슬라비아 해체 과정과 관련이 있다.
동유럽 독립 당시 1991년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 마케도니아가 독립을 했고,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사회주의 공화국도 독립을 선언하는 투표를 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보스니아계와 세르비아계가 대립해 전쟁을 하게 되는데 이 영화는 UN군 개입 후의 스레브레니차 집단 학살을 다루고 있다.
이 전쟁으로 8000여명이 목숨을 잃고 1700여명이 행발불명되었다던가.
영화 주인공 아이다는 UN군 통역관으로 일한다.
그런데 자신의 가족들이 안전지역인 UN군 지역으로 들어오지 못하자 온갖 방법을 동원해 그들을 구하고자 애쓰지만 결국 민간인에 대한 대규모 학살에 가족을 잃게 된다.
아랫집에 살던 사람, 교직에 있을 때 가르친 제자가 갑자기 자신을 향해 총부리를 들이대면 어떨까?
일정한 거리를 두고 감정을 최대한 자제하면서 영화가 진행되지만 그래서 더욱 가슴이 아프다.
전쟁이 끝났을 때 자신에게 총구를 겨눈 사람, 가족을 죽인 사람들과 과연 한 아파트에 살 수 있을까?
종교가 무엇이고, 민족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서로 죽고 죽이는 일이 지구상에 벌어지는 것일까 인간에 대한 회의가 밀려온다.
많이 나아졌다고 해도 이 지구상에 크고 작은 전쟁이 끊이지 않는다.
인간이 본래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동물이라지만 인간에게 그런 면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섬세한 여성 감독의 눈으로 그린 영화를 보면서 지도상에서 보스니아를 찾아본다.
지금 그곳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