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오늘의 시 - 백목련 진다
솔뫼들
2019. 4. 22. 13:51
728x90
백목련 진다
김선우
이상하다, 계곡을 몰아쳐오는 눈보라
저 눈꽃떼를 어디서 만났던다
꽃으로 오기 전
네가 눈보라였다면 나는 무엇이었나
청명한 봄 한나절
돌연 단전 밑이 서늘해지고
내장을 따라 들어선 계곡에
꽃, 잎새도 없이 만개한 적멸보궁
얼음 녹아 아지랑이 흐르는데
왜 너는 그토록 서늘한 미소로 흔들리는지
네가 웃는 자리마다 조금씩 금이 가며
계곡의 뿌리가 시큰하다
독은 독으로 멸한다는데
동토를 녹인 건 열망의 독이었나
거꾸로 흐르는 눈보라의 꿈
사월 아침마다
목련꽃 져버릴까 두려웠더니
제 살 으깨며 번지는 석양 아래
눈보라여, 너는 자결을 준비했구나
뒤란에 나부끼던 무령 타래같이
새벽부터 곱게 몸단장 끝냈구나
꽃으로 오기 전 너는 무엇이었나
거꾸로 선 폭포였나 진흙창 뒹굴던 놋반지였나
내 독은 아직 사타구니 뜨거운 희망이라서
절망을 멸하러 오는 절망의
맨얼굴을 볼 수 없다 네 발목을 잡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