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오늘의 시 - 길 위에서

솔뫼들 2018. 12. 31.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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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 위에서
                              나희덕

     길을 잃고 나서야 나는
     누군가의 길을 잃게 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어떤 개미를 기억해내었다
     눅눅한 벽지 위 개미의 길을
     무심코 손가락으로 문질러버린 일이 있다.
     돌아오던 개미는 지워진 길 앞에서 두리번거리다가
     전혀 엉뚱한 길로 접어들었다
     제 길 위에 놓아주려 했지만
     그럴수록 개미는 발버둥치며 달아나버렸다.
     길을 잃고 나서야 생각한다.
     사람들에게도
     누군가 지나간 자리에 남는
     냄새 같은 게 있다는 것을,
     얼마나 많은 인연들의 길과 냄새를
     흐려놓았던지, 나의 발길은
     아직도 길 위에서 서성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