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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뫼들 2018. 5. 10.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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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

제목이 '결'이다.

작가가 무슨 의미로 썼을까 생각하다가 여러 가지 의미를 모두 함축하고 있다고 스스로 결론을 내린다.

작가가 어떤 의도로 썼든 읽는 내 마음이니까.


 청산도에서 만난 자칭 '청산도 작가'의 작품 '결'을 읽었다.

이외수 문학상 수상작품이라고 했다.

이틀에 걸쳐 4번 만났을 때 들은 이야기가 소설의  뼈대가 된다고 했는데 무척이나 궁금했다.


처음부터 토박이말과 전라도 사투리가 사방에서 나를 공격한다.

정신 차려야겠군.

대화체뿐 아니라 서술하는 문장에서도 툭툭 뛰어나오는 살아 있는 사투리와 비속어까지 어휘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작가가 부러워진다.


 전혀 예상하지 않았는데 내용에는 우리 현대사의 아픔이 서려 있다.

청산도에서 나고 자란 4명의 소년.

함께 죽고 함께 살자고 의형제를 맺은 4명이 바다라는 상황에서 몇 번 죽을 고비와 맞닥뜨리는데 그때마다 서로 도움이 되어 살아 남는다.

그리고 40대 중반이 되어 만났을 때 사건이 발생한다.

배를 타고 나가 생선 몇 마리 건져 안주 삼아 술 한 잔 하자던 길에 안개에 휩싸여 배가 전복되고 생사의 갈림길에서 돌아보게 되는 자신들의 삶.

그들의 삶이 바로 청산도 사람들의 삶이고 현대사이기도 하다.

아니 모든 사람들의 삶의 다른 모습이겠지.


 그들이 살아가는 동안 두 명은 광주사태와 연관이 있다.

거기에서 팔 한쪽에 장애를 갖게 되고 다른 친구 한 명을 잃는 아픔을 겪은 사람,

무사히 그곳을 빠져나오고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인물,

중학교 졸업 후 청산도에  눌러앉아 바다와 더불어 생계를 이어가는 두 친구.

그들이 주고받는 대화는 진득하면서도 때로 웃음을 유발시키고 그러면서 또 가슴 저리게 한다.

어쩌면 사는 일이 그런 것 아닐까.


 그때 광주에서 잘못 됐으면 진작에 이 지상에서 꺼져버렸을 수도 있고, 설혹 목숨이 붙어 있더라도 허접한 폐인으로 연명했을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다행히 사람 구실하며 살아왔다. 그것이 다 부축해주고 손 잡아주고 등 다수려준, 사람이란 존재들의 덕이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어찌 저 거친 세상의 길을 중도에 안 자빠지고 걸어올 수 있었으랴. 치영은, 더불어 살아주었던 세상의 사람들이 자신의 하느님이었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