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미국에서 퓰리처상을 받은 작품이라고 했다.
어떤 내용일까 무척 궁금하다.
제목만 가지고는 내용을 전혀 짐작할 수 없으니 더욱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처음에 책을 읽으면서 인물이 마구 헷갈렸다.
물론 다 읽고 나서 대충 정리가 되기는 했지만.
중요한 인물이야 계속 나오니 상관이 없기는 하다.
외국의 책이 번역된 경우 특히 이런 일을 많이 겪는다.
대하소설을 읽을 때처럼 인물도를 그려가면서 읽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이유이다.
이 책은 미국에서의 노예 이야기를 다룬다.
사실 노예 이야기는 소설이나 영화로 많이 다루어졌다.
어렸을 때 읽었던 '톰 아저씨의 오두막', 대학시절 읽은 ''뿌리', 몇 년 전에 본 영화 '노예 12년' 등등.
흑인이 미국의 대통령이 되기도 했으니 세상이 많이 변했지만 피부색뿐 아니라 종교나 민족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이 지구상에서는 아직도 차별이 만연하다.
그러기에 이 책이 아직도 사람들의 선택을 받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제목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는 노예 해방 조직을 뜻하는 은어였단다.
그것을 실제로 있는 것처럼 상상을 더해 만든 작품이 바로 이 책이다.
시저라는 친구의 손에 끌려 지하철도에 오른 코라라는 소녀가 걷는 길은 당연히 가시밭길이다.
그 길에서 코라는 자신을 이끌었던 시저를 잃고, 다시 리지웨이라는 노예사냥꾼에게 잡히기도 한다.
그래도 자유를 향한 그녀의 집념은 사그라들지 않는다.
조지아, 사우스캐롤라이나, 노스캐롤라이나, 그리고 세인트루이스까지 이어지는 자유에의 길.
사실 우리는 노예 생활을 짐작할 수 없다.
그저 막연하게 고통스럽겠다는 생각을 할 뿐이다.
물론 어떤 주인을 만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래도 자유인과 노예는 엄연히 다를 것이다.
새삼스럽게 나는 지금 내게 주어진 자유를 만끽하며 제대로 살고 있나 생각해 본다.
그런 입장에서 보면 이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망각하고 있던 건 아닌지 말이다.
어떻게 그렇게 끔찍한 짓이 기쁨의 도구가 될 수 있었을까? 밸런타인 농장에서는 모든게 반대였다. 일은 고통스러울 필요가 없었고, 오히려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줄 수 있었다. 체스터같이 밝은 아이는 몰리와 친구들이 그렇듯이 더욱 밝게 잘 자랄 수 있었다. 엄마는 딸을 사랑과 다정함으로 키웠다. 시저 같은 아름다운 영혼은 여기서라면 원하는 무엇이든 될 수 있었고, 이곳의 다른 이들도 모두 그렇게 될 수 있었다. 땅을 가질 수 있고, 학교 선생님이 될 수 있고, 흑인의 인권을 위해 싸울 수도 있었다. 심지어 시인이 될 수도 있었다. 조지아의 비참함 속에서 코라는 자유를 상상했지만, 이런 모습일 줄은 몰랐다. 이제 자유란 아름답고 귀한 무엇인가를 위해 함께 노력하는 것이었다.